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수명이 길어지고 연금 수급 시점이 늦춰지면서 소득 공백이 발생하고, 이를 메우기 위한 방안으로 정년 연장이 거론되는 흐름은 한국뿐 아니라 이미 여러 국가에서 경험한 과정입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가장 먼저 이 문제를 마주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제도화한 나라입니다.

일본은 단순히 정년을 연장하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유지하면서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고용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핵심은 ‘퇴직 후 재고용’이라는 개념으로,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일단 기존 고용 관계를 종료한 뒤 새로운 조건으로 다시 고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는 근무 형태와 역할을 재설정할 수 있고, 기업은 임금 체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비교적 유연합니다. 일정 연령 이후에는 기존과 같은 전일제 근무를 유지할 수도 있고, 근무일을 줄이거나 시간제 형태로 전환하는 선택도 가능합니다. 성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구조를 함께 도입하면서 숙련도가 높은 인력은 계속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역할이 축소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단순히 나이에 따라 일괄적으로 대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여도와 상황을 반영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닛산자동차는 정년 이전부터 단계적으로 직무와 책임을 조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정 연령에 가까워지면 여러 차례 면담을 통해 근무 방식과 역할을 논의하고, 이후 재고용 시점에는 임금과 직무가 새롭게 설정됩니다. 임금 수준은 기존보다 낮아지지만, 업무 강도와 책임 역시 함께 조정되기 때문에 전반적인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운영됩니다.
기업 입장에서 인건비 부담을 관리하면서도 숙련 인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인력을 완전히 잃지 않으면서도, 신규 채용을 위한 여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고령 근로자가 증가해도 청년 채용이 급격히 위축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고, 일부 기업에서는 재고용 인원이 대폭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신규 채용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고령자 고용만의 이슈로 끝나지 않습니다.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쪽을 늘리면 다른 한쪽이 줄어드는 ‘대체 관계’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합니다. 한국은행 분석에서도 고령 근로자가 늘어날 경우 청년 고용이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가 제시된 바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임금 체계와 직무 설계가 함께 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은 직무 중심 임금 체계를 기반으로 고령 근로자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방향을 택했고, 미국은 은퇴 이후 파트타임이나 컨설턴트 형태로 재진입하는 ‘브리지 잡(bridge job)’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시장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각국이 선택한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존의 정년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유연하게 재구성하는 흐름입니다.
한국은 임금피크제와 같은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나, 직무 조정 없이 임금만 낮아지는 구조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임금 조정만으로는 제도의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실제 업무 내용과 책임이 함께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일본 사례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임금과 직무를 동시에 조정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정년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대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노동시장에 머무는 기간 역시 길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단일한 해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법정 정년을 단순히 연장하는 방식은 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기업의 부담과 고용 구조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또 다른 갈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고령 근로자의 경험을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세대가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드는 것, 그 과정에서 임금과 역할, 책임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하는 일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고용 시스템은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지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의 논의에서도 중요한 참고 사례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