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된 이스마엘 하니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발화점이 된 지난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인질극을 배후에서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입니다.
하니예는 이스라엘이 하마스 격퇴전을 벌이고 있는 가자지구 난민촌에서 1962년 태어나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시절 이슬람 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했습니다.
그는 1988년 하마스가 설립될때부터 창설멤버로 활동했고, 이듬해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인 1차 인티파다에 적극 가담했다 투옥되면서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강경파 지도자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삼엄한 감시를 받던 그는 강경파를 이끌며 반이스라엘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본거지인 레바논에서 생활하다가 가자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국가 해법’으로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내용의 오슬로 협정이 1993년 체결되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는 등 일시적으로나마 평화무드가 무르익은데 따른 것이다.
1997년에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창립자인 아흐메드 야신(Ahmed Yassin)을 석방한 후 아흐메드가 그를 하마스의 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2004년 야신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지고 이듬해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에 넘겨주자 PA의 온건 정책에 반발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전면 투쟁을 선언하였습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를 거두면서 총리직에 임명되어 8년 동안 임기를 치렀습니다..
2024년 4월 10일 이스라엘군 포격으로 하나예의 자녀 3명과 몇명의 손주들이 사망했으며, 6월 25일에는 이스라엘 군의 공습으로 인해 여자 형제 및 가족 몇 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내부 정파간 분열이 극심해지고 결국 이듬해 파타당의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하니예를 내각에서 퇴출시키면서 가자지구는 하마스에 의해 완전 장악했고, 팔레스타인은 파타가 통치하는 서안지구와 하마스 치하의 가자로 사실상 쪼개졌습니다.
출처: Copilot,조선일보,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