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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神이란 어떤 존재인가

by 상식살이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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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사람들에게 신은 지금 우리가 종교에서 떠올리는 신과는 꽤 달랐습니다. 이 시대의 종교는 지금의 유일신 신앙처럼 뚜렷한 교리나 구원관, 성서, 교회 체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믿고 싶은 신을 골라 믿을 수 있었죠. 말하자면 메뉴에서 고르듯,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앙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자유로운 종교적 분위기 덕분에 당시의 신앙은 ‘제도화된 교회’가 아닌 ‘자유 시장’에 가까웠습니다. 누구든 원하면 신전을 세울 수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신을 중심으로 신앙을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특정 도시에서 숭배하는 신을 반드시 같이 믿을 필요도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고대의 다신교는 각자가 원하는 만큼 신과 관계를 맺는, 꽤 개인적인 종교였던 셈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대의 신이라는 존재가 지금의 신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성서를 기반으로 한 유일신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에서 신은 이 세계를 초월한,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인간처럼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불사의 생명을 지니고 있었지만, 인간처럼 이성을 갖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때로는 실수도 하는 존재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세상을 세 가지 존재로 구분했습니다. 동물, 인간, 그리고 신. 동물은 이성도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졌지만 역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면 신들은 이성도 있고, 불사의 존재로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다시 말해, 신들은 단지 영혼만 있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람과 비슷한 성격과 취향, 그리고 이야기까지 가진 실재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에게 신이란 절대적이고 만인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초인간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신이었다"라는 말은, 그가 전지전능한 존재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 이상의 통찰과 정신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찬사였습니다. 이처럼 ‘신적’이라는 표현은 신의 세계를 닮은 탁월함을 뜻하곤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신들을 부정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우스를 유피테르, 야훼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다투지 않았습니다. 마치 동물이 지역마다 이름만 다르듯, 신들도 그저 이름만 달랐을 뿐 본질은 같다고 여겼던 것이죠. 오직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동물 같은, 너무 과장된 신들—이를테면 동물 형상의 이집트 신들—에 대해서만 비웃음을 보냈을 뿐입니다.

 

이러한 신 개념은 인간과 신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였지만,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과 약점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을 존중하고 제물을 바치며 부탁을 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신이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실망하고 분노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을 낫게 해달라며 닭 한 마리를 제물로 약속했고, 신이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신이 이럴 수 있느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신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신전을 향해 돌을 던지며 항의한 기록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들과 맺은 관계는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 관계’ 같았던 셈입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은 우리에게 익숙한 초월적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초인간적’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당대 철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신처럼 되라", 즉 지혜롭고 이성적인 삶을 통해 인간 이상의 존재로 거듭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신과 인간의 거리는 무한히 먼 것이 아니라, 단 한 걸음만 더 올라서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던 것입니다.

 

 

 

 

 

출처: 필립 아리에스, 조르주뒤비 책임편집 사생활의 역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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