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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의 아버지 죽이기

by 상식살이 2024.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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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공개/사생활의 역사

 

그리스인들을 아주 놀라게한 로마법의 특성은 사춘기가 지났던 혹은 그렇지 않았던 또는 결혼을 했던 안했던 모든 남성들은 아버지 권위 아래 있었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는 완전한 의미의 로마인, 즉 '한 집안의 가장'이 되지 못하는데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당연하게 자식의 자연인적인 재판관으로서 그에게 최악의 경우 사적인 사형선고까지 내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유언자의 능력은 거의 제한이 없어서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로부터 상속권을 빼앗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 아버지가 없는 열여덟살 난 젊은이는 자기 애인을 상속녀로 내 세울수 있었던 반면에 아무리 성년이 된 자식이라도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는한 그는 법적으로 아무런 권한을 조금도 행사하지 못했다.

 

로마시대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의 법적 권한은 많이 완화되었다. 모든 아버지들이 자식의 상속권을 빼앗았던 것은 아니며, 자식의 상속권을 빼앗으려면 무엇보다 유언을 남기고 죽어야 가능했다. 상속권을 잃은 아들은 법정에서 유언의 무효화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들의 상속권 가운데 4분의 3까지만 빼앗을 수 있었다. 아들에게 사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경우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거의 마지막으로 내려졌는데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식들은 여전히 자기 재산을 소유하지 못했고 그가 취득하거나 상속받은 재산은 모두 아버지 소유였다. 경우에 따라 아버지는 자식에게 일부분의 자본을 주기도 했고, 자식이 성년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자식을 자신으로 부터 둑립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수단과 방법은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했고 아버지로 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도 곧위험에 봉착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성인남자는 아버지 동의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심리적으로 상당히 힘든 상황이 유지되었다. 계약도 맺을 수 없었고, 노예를 해방시키지도 못하며, 유언도 할 수 없었다. 노예처럼 아주 불안한 상태에서 소액의 저축만 할 수 있었는데 이것도 아버지에 의해 취소될 수 있었다.

 

자식들의 최후의 멍에는 아버지의 동의 없이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귀족 가문 출신의 젊은이는 언제나 원로원 의원이 되려고 애쓰고, 일반 명망가 출신의 경우에는 자기 도시의 시의원이 되려고 애썼다. 그러나 모든 공직자가 빵과 원형경기장을 통해 경력을 쌓던 시대에 이러한 명예직을 감당해야 할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을까? 따라서 집안의 가산에서 필요한 자금을 지출해 줄 아버지의 동의가 있어야만 원로원 의원이나 법관이 되기 위한 노력이 가능했다.

 

따라서 아버지의 사망은 자식들에게 운이 나쁘지 않다면 상속받을 기회가 도래한 것임을 예고하고, 지금까지의 경제적, 심리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성인이 되고, 혼전이거나 이혼한 딸들은 상속녀가 되어 마음먹은 상대들과 자유로이 결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 살해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 되었으며, 실제로 그러한 일이 비교적 자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프로이트식의 기발한 설명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출처: 필립 아리에스, 조르주뒤비 책임편집 사생활의 역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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